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이럼 존슨 (문단 편집) === 여담 === * 자신과 마찬가지로 거물 진보주의자이자 강경 고립주의자로 평가받았던 [[로버트 M. 라폴레트]]와는 의외로 사이가 상당히 나빴으며, 이 때문에 [[진보당(미국 1924년)|1924년 진보당]]에도 참여하지 않았지만 공약 자체에는 공감대를 갖고 있었기에 비판적 지지를 보냈다고 전해진다. * 또다른 고립주의적 진보주의자인 헨리 캐벗 로지 시니어[* Henry Cabot Lodge Sr. (1850-1924) - [[헨리 캐벗 로지]]의 아버지이다.], [[윌리엄 보라]]와 함께 20세기 초반 3대 고립주의자로 같이 묶이는 경우가 많다. * 본인은 상당히 장수했지만, 차남인 아치발드 맥닐 존슨이 1차대전 참전 당시 생긴 [[셸쇼크]]와 불운한 결혼생활로 고통받다 1933년 43세의 나이로 권총자살하는 바람에 [[참척]]의 고통을 겪은 바 있다. * 1917년 (또는 1918년) 반전운동을 할 당시 남겼다는 "전쟁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진실이다(The first casualty when war comes is truth.)"라는 명언이 [[러우전쟁]] 발발 이후 발굴되어 국내외 언론에서 자주 인용되고 있는데, 정작 그가 그런 말을 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. [[https://www.theguardian.com/notesandqueries/query/0,5753,-21510,00.html|참고]] * 성격이 안 좋기로 꽤나 유명했다. 그의 친구였던 윌리엄 E. 보라 상원의원은 "상대방이 존슨을 반대한다면 그는 상대방을 증오한다."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고 한 역사학자는 "존슨의 충성심을 믿느니 부러진 갈대를 부여잡는게 낫다"라고 할 정도였으며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고집이 센 사람이었다. 그러나 그와 동시에 굉장히 청렴하고 용기 있으며 대단한 웅변가로서의 면모를 가지기도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